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딱 이랬다. 이 소설은 나이 마흔다섯의 중견 판사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해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와 친했던 동료 법조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자신의 승진이나 자리 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아니라 그가 죽은데 대해 안도한다. 냉정하지만 할 수 없다. 그의 아내마저도 똑같으니 말이다. 아내는 추도미사에 참석한 고인의 법학교 동창에게 연금을 비롯해 국가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지원금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반 일리치는 명문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순조롭게 법조인이 되어 평생 안락하고 편안한 길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새 집으로 이사해 벽을 꾸미던 중 옆구리를 다치고 자꾸만 이상한 통증을 느끼다 마침내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찾아온다. 

병세가 악화돼 직장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고통과 씨름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본다. 그동안 기쁨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고 추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상류층에 진입하면 뭔가 좋은 게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즐거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추구해왔던 쉽고 편안한 삶이 실은 위선으로 가득한 삶, 물질적인 행복을 정신적인 행복으로 착각한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고 이어진 실망,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 없는 직무,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 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 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내 발 아래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이반 일리치는 철저히 명사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면 성공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로지 성공과 행복을 좇아왔는데 막상 죽음을 맞게 되자 자신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자신은 산에 오른다고 생각했고, 또 세상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산에 오르고 있었는데, 실은 삶이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반 일리치처럼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평생 제대로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많은 부모가 자녀들한테 하는 말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공부 안 해서 수능성적 안 좋으면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러면 좋은 기업에 못 들어가고, 또 그러면…. 이런저런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차라리 이게 더 낫다. 수능성적 안 좋아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아니, 수능성적과 관계없이 아주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어서 “아, 제대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하고 아쉬워한다면 그건 절대로 만회가 안 된다. 

아무리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지나간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스운 것 같지만 무서운 이야기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며 살아가는” 동사형으로서의 나라면 이제 누구도 나의 안정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의 중심이 바깥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으니 말이다. 명사형의 소유물은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사라져버리지만 동사형의 삶은 계속해서 커나간다. 삶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부쩍부쩍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계속>

글 | 박정태 월든스쿨 교장

박정태는 한국일보 등에서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현재 저술 및 강연을 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알고 나서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10년간의 《월든》 공부를 토대로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월든 강의’를 하고 있다. 《월든》을 좋아하고 소로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만든 ‘월든 스쿨’의 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불멸의 문장》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자연의 순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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