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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2006 한국인 vs 일본인 (15)

"속 보이는 한국인, 속 감추는 일본인”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서 인기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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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을 마치고 식당 앞에서 헤어질 때 부장이 말했다.
“김과장. 잠깐 보지. 우리 간단하게 맥주로 입가심하고 갈까?"
저 앞에 생맥주 집을 향해 두 사람은 걸어갔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부장이 말했다.
“당신 말이 뭐 그렇게 직선적이야. 같은 말이라도 에둘러 이야기해도 될 것을 상대방 마음을 콕콕 찌르는 식으로…"
김과장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봐, 일본 사람들은 할 말이 없겠나? 그러나 말을 삼가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 그게 삶의 지혜야. 일본인들의 겉으로 표현하는 ‘다테마에(建前)’와 진짜 속마음인 ‘혼네(本音)’가 다르다네. 어쩌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속내…. 그게 그네들의 강점이지.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어.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패(百戰不敗)라고. 일본인들은 자신을 숨기는 반면 한국인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고. 결국 한국인의 속마음을 파악한 일본인들이 승리하지 않겠나?"
김과장이 말을 가로막았다.
“왜 우리 기질들을 나쁘게만 보는 거죠? 부장님의 주장은 일본인들의 관점입니다."
순간 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과장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저부터 속 얘기를 감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솔직담백하고 직선적입니다. 상대방이 금방 알아채고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뒤끝도 적죠. 그러나 일본인들은 속 이야기를 감추고 참는 성격입니다. 생각이 많고 쌓아두며 곡선적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모릅니다. 사이트와 사이트의 이동이 1초도 안 걸리는 시대, 빨리빨리 모든 것이 움직이는 시대에 한국인의 솔직한 성격이 더 맞는 게 아닐까요?"
김과장은 일본의 구로다 특파원이 쓴 글을 소개했다. 구로다가 보기에 한국인은 격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스트레이트’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얼굴로 웃고 마음으로 우는’ 경우가 드물다. 얼굴이 울고 있으면 마음도 울고 있고, 얼굴이 웃고 있으면 마음도 웃고 있는 것이다. 때로 격정의 순간이 오면 말과 몸으로 모든 감정을 털어내고, 그리고 그 후는 천사처럼 편안하고 밝은 얼굴이 된다.
반면 일본인은 ‘얼굴로 웃고 마음으로 우는’ 스타일이다. 참으며 속에 담아두고 나중에 ‘원망스럽다’라고 음험하게 나온다. 겉으로는 밝지만 어두운 성격이 일본인들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된다. 얼굴로 울고 마음으로 웃는 이중인격….
김과장의 말을 끝까지 듣던 부장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됐다, 됐어. 선배가 한마디 하면 때로는 언짢더라도 잠자코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해. 그건 생활의 지혜지 위선이 아닐세."
한기자, 박교수와 함께 다시 3자 대화가 시작됐다. 장소는 신사동 서울관세청 4거리 모퉁이에 있는 칼국수집에서다. 낮에 골프를 친 박교수는 하늘색 점퍼 차림에 얼굴에 화색이 완연했다.
“오랜만입니다. 한 일주일 된 것 같네요."
김과장이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나. 하여간 일주일 가는 게 예전 하루 지나가는 것 같아. 어찌나 빠른지…."
한기자가 끼어들었다.
“원래 세월의 속도는 나이대로 라고 하지 않습니까? 30대는 시속 30㎞, 40대는 40㎞…" 
“그러면 나는 시속 60㎞가 넘는다는 말인가? 참 재미없군."
김과장이 속내를 감추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21세기에 경쟁력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기자가 잠시 생각하다 단정하듯 말했다.
“그들은 21세기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부적격자들이야."
“왜냐하면 20세기가 메시지(message)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이미지(image)의 시대기 때문이지. 20세기에는 내용(contents)이 중시되는 시대였지만 21세기에는 인상(impression)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라네. 다시 말해 20세기가 논리와 지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정서와 감성의 시대일세. 이해할 수 있겠나?"
김과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지. 정보가 부족하던 십수년 전만 해도 신문을 사면 끝까지 다 읽고 서로 돌아가면서 읽곤 했어. 그러나 정보가 흘러넘치는 21세기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 핵심정보를 파악할 수 있느냐는 것일세. 당연히 정보의 취사 선택(choice)의 기술이 중요하네.
1초내 몇번 씩 클릭이 진행되는 인터넷 시대에 선택되는 정보의 최우선 조건은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 인상이란 뜻일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순간적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인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정보는 죽은 걸세. 인쇄매체가 점점 후퇴하고 인터넷 매체가 뜨는 이유도 같은 이유지. 이렇게 초를 다투는 세상에서 ‘혼네’니 ‘다테마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옛날 옛날 한 옛날’ 스토리 아닌가?"
“그래요. 한선배. 흠은 좀 있지만 우리 같은 직정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더 맞을 수 있겠네요. 기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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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보통 혼네(본심)는 숨기고 다테마에(겉마음)로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출처= 유튜브 채널 '사요(SAYO)에서>

 

 
“비단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4년 전 대통령 선거를 기억하겠지. 그때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한나라당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김과장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미지 정치에서 패한 것이죠.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적 정서를 일찌감치 간파한 노무현은  개혁적이고 신선한 이미지를 구축했죠. ‘반(反)기성 정서’에 편승해 거대 언론을 공격하는가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는, 기가 막힌 연기력을 보였죠."
“정확한 분석이군. 그래. 이회창이 20세기 메시지 정치에 안주했다면 노무현은 21세기  이미지 정치에 올인했지. 이미지에 현혹된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지만 다음 대선에서도 이미지는 여전히 파워를 발휘할 것일세."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을 때 하루는 일본인 교수가 나를 찾아와서 묻더군. 한국 유학생들이 일본 학생들보다 미국서 더 잘 적응하고 인기가 있는 비결을 아냐고.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는 웃으며 ‘커뮤니케이션’때문이라는 거예요. 한국인들의 직선적 대화가 서구인들에게 이해도 쉽고 흥미 있게 전달된다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동료 영국인 교수에게 찾아가 그 일본 교수 이야기가 맞냐고 물어보았죠. 그 영국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일본인은 예의 바른데(polite), 한국인은 솔직합니다(frank)’"
김과장과 한기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교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물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우리나라가 세계 리딩 컨트리가 되려고 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죠?"
김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콤플렉스란 대개 타자(他者)나 자기 스스로가 규정한 편견이나 부정적 인식에 자아(自我)가 묶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콤플렉스가 전혀 허황된 근거에 세워진 환상은 아니죠. 선과 악, 긍정과 부정으로 이뤄진 복잡한 인간사에서 과도하게 악이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해 그것이 마치 본질인양 매도 내지 호도해 생긴 것입니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박교수는 마치 강의하듯 또박또박 말을 끊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콤플렉스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자연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논리도 힘도 가지게 됩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박교수가 말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 일본과 한국이 있다면 서양에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있다. 아일랜드는 이웃 섬나라 영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고 “못난이"라고 멸시를 당했다. 물론 지금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영국을 추월할 정도로 발전됐지만 양국의 불행한 과거사에 따른 긴장 갈등 관계는 여전하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하는 유혈 테러사태를 봐도 그렇다.
19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만약 아일랜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영국인들은 아일랜드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어느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identification) 내지 우월성을 형성하기 위해 자신과 비교되는 ‘못난 타자’를 필요로 했고, 그런 역할을 할 타자가 없을 때는 가공으로 만들어내는 일도 불사했다는 뜻이다.
과거 영국인들은 변방 아일랜드를 타자로 이용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속성을 이성적, 근면과 자조, 그리고 점잖음과 체통으로 규정한 반면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감정적, 게으름과 의뢰심, 그리고 난폭함과 무례함으로 묘사했다. 이후 이 같은 상투적 투사(投射)는 이미지로 굳어져 지금도 아일랜드인에 대해서는 “감정적이고 게으르고 술 좋아하고 서로 잘 싸우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식의 ‘남 덮어 씌우기’ 전략은, 보다 힘이 센 국가나 개인이 보다 약한 이웃에 대해 자주 쓰던 수법이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 두드러져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했다면 비유럽 세계는 그 반대로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했다. 서양과 동양의 대비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인종주의 및 성차별도 함께 진행돼 서양이 강건한 남성이라면 동양은 약한 여성이나 어린 아이로 묘사되곤 했다.  
여러분은 아까 영국이 아일랜드인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미국이 멕시코인에게, 일본이 우리를 비판할 때 쓰던 이야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대열에 동참한 일본이 가장 먼저 베낀 것 중 하나가 ‘영국의 아일랜드 다루기’였다. 일본은 자신들을 선으로 규정한 반면 한국을 사실상 악으로 규정했다. 더구나 구한말 사회는 우리 눈으로도 보기에도 최악의 시기 아니었나?
거기서 식민사관이 탄생했고 이에 따른 부정적 인식 태도는 부지불식간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깊숙이 침투, 지금껏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깊은 콤플렉스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볼까. 민족주의자 함석헌 선생이 1950년대 쓴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보면 한국은 사계절 온화한 기후 탓에 사람들이 뜨뜻미지근한 성격이 됐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 구로다 특파원이 쓴 책을 보면 “한국은 봄, 가을은 없고 여름과 겨울이 긴 사실상 두 계절 밖에 없어 매사 극단적인 성격"이라고 묘사돼 있다. 같은 한국인을 놓고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해석은 모두 일본인들의 부정적 대한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함선생의 해석은 “그러니까 무기력한 한국인은 우리 일본인들이 보호해줘야 한다"는 일제 식민사관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며, 구로다의 해석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매진하는 한국인의 에너지를 어떻게든 낮춰 보려는 지금 일본인들의 부정적 인식태도의 전형이다.
몇 년 전 일본인이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이란 책이 장안의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저자의 비판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국이 아일랜드 비판하듯 어떻게 부정일변도로 보고 있는가가 놀라왔다.
그 책에 대한 호응이 컸다는 점은 아직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한국인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는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일본이 때리는 회초리에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masochism)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콤플렉스는 묘한 것이다. 콤플렉스를 준 타자를 미워하면서도 그를 모방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를 무시하고 싶은 데도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에 일비일희(一悲一喜)하게 된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콤플렉스다.   
또 한가지 예를 들까? 지금 집권 세력이 내세우는 자주(自主) 논쟁이 대표적인 것이다. 자주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우리는 ‘한국의 4000년은 외세 의존으로 점철된 굴욕의 역사"라는 일본 식민사관의 저주에 더욱 얽매이는 결과를 낳게 만든다.
일본의 우익들은 북한이 구식 미사일을 쏘며 자주를 외칠수록, 남한에서 ‘당당하게’ 미군 철수 주장이 가열차지면 질수록 박수를 칠 것이다. 한국인의 ‘자주’ 콤플렉스가 훌륭하게 작동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군사대국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한국인이 독립적인 민족이 아니었다면 지난 4000년간 티벳, 몽골, 만주, 여진, 돌궐 등 허다한 제국들이 병합?흡수됐는데도 불구하고 ‘동양의 블랙홀’ 중국 옆에서 유일하게 살은 나라가 됐을까? 한국인의 자주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2차 대전 후 원조를 받은 세계 많은 국가 중 유일하게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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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21세기에는 한국인의 직정적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더 적합하다. 사진은 21세기 유튜브 시대를 알리는 <판도라 상자에서 나오는 유튜브>란 제하의 이미지.

 

긴 이야기를 마치고 박교수는 두 사람을 바라다 보았다. 두 사람은 숙연한 자세로 경청하고 있었다. 술잔의 술도 그대로였다. 박교수가 마무리 말을 했다.
“우린 너무 자학해왔어요. 지나친 비판에만 익숙해 왔어요. 일본인들의 만들어 놓은 트랩,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제 우리는 그런 ‘부정적 인식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될 때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우리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세요. 발견하세요.
나는 여기 젊은 두 분이 기존의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대화를 들으면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한 세기 넘게 우리를 짓눌러온 콤플렉스를 딛고 자유롭게 비상(飛上)하겠구나라고 말입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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