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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희의 산중일기

작은 새의 선물

끝이 아니길 바라며 "친구야 사랑해"

최찬희 작가  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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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이로 난 좁은 길에 아주 작은 물체가 언뜻언뜻 움직이는 게 보인다.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이 젖은 길 위에서 짝꿍도 없이 혼자 놀고 있는 작은 새였다. 무슨 새일까, 녀석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콩콩, 뾰로롱, 통통통. 급하게 꺾여 내려간 좁은 계곡의 물소리에도 분명히 느껴지는 앙증맞은 날갯짓이 보인다. 잠시 차를 세워 그 노는 양을 더 보고 싶다. 이 맑고 울울한 산길에 내려앉아 선물처럼 내 맘을 행복하게 해주는 녀석의 사랑스러운 몸짓을.


길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이 더 앙상해졌음을 느낀다. 내려가던 길에서 만난 하 대장 내외분이 그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음을 알린다. 얼마나 안 좋아진 걸까. 완치된 줄 알았던 폐암이 뇌와 임파선으로 전이하여 재발한 뒤, 석 달 만에 보는 그녀의 상태를 나만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무참해진다.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예와 변함없이 해맑았다. 가는 허리에 더 높아진 턱. 차에 타면서 잠깐 내 얼굴을 샅샅이 살피곤 다시 앞을 본다. 마치 마지막으로 잘 익혀두기라도 하는 듯, 눈동자에 힘을 준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슬픔이 내 가슴을 퍽, 치고 들어온다.


산길은 예전보다 더 푸르고 싱싱해졌다. 그녀의 암이 재발 되기 전에 이 길을 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탄성을 질렀었나. 봄이 한껏 달려오던 날씨에 짓궂게 내린 눈이 온 산을 덮고 있어서 마치 요새미티의 설산을 바라보는 듯한 장관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곳마다 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던 그 풍경을 나 혼자만이 아닌, 그녀와 함께 봤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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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보았던 하얀 세상이 잠깐 새에 사라지는 풍경을 보지 않고는 누구도 말하지 못하리라. 만발한 산벚꽃이 꽃비 져 흩날릴 때 “비우디 풀! 비우디 풀!"을 연발했던 산속을 굽이도는 길에 지금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다. 구름 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이다. 우리는 또 과장된 감동을 분출하듯 토해내며 수다스럽게 천천히 산을 넘어갔다. 특송을 맡은 예배시간을 맞춰서 가는 길이지만 염불에는 관심 없는 중처럼 긴 시간을 기다려 만났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아까 보았던 작은 새만큼이나 귀엽고 예뻤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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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교회는 작고 허름했다. 교인이라 해봐야 스무 명 남짓, 가족 같은 교회 식구들이다. 잠깐의 나눔이 이어지고 그녀의 특송이 시작됐다. 몹시 야위었지만, 아직은 소녀처럼 풋풋한 얼굴로 좀 더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고픈 간절한 울림은 늘 그랬던 것처럼 듣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그래, 마음껏 목소리를 내렴. 이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 지금 두 팔 벌려 너를 안아 주시잖니. 그러니, 마음껏, 마음껏! 아, 그런데 오늘은 더 견디기 힘든가 보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 걸까. 나만 모르고 있는 그녀의 힘든 상태가 죄스럽다.


“주는 나의 어지신 이~ 나의 주 ~ 나의 하나님 ~ "


어떤 환란이 와도 내가 주를 사랑하고 있음을 전하려는 듯한 그녀의 얼굴과 몸짓에서 은은한 광배가 빛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은혜가 강물처럼 흐른다. 그래, 그렇게 이끄시는 대로 가는 거야. 너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시는 분께로.


예배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기력이 다해서 링거를 한 병 맞아야만 다음 시간을 버틸 수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고단위의 비타민과 아미노산 수액을 맞고 일어났다. 겨우 기력을 회복하고 즐겨 다니던 ‘쟈크’에 갔다. 오늘은 몸에 안 좋다고 조심하던 단팥빵을 고르며 나를 쳐다본다. 나도 같은 걸 집어 들고 눈빛으로 화답했다. 암만!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커피를 마주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망할 수 있는 마지막 믿음에 대해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그녀가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그녀가 자기 입술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것처럼. 조금은 원망과 회한의 울부짖음도 있으련만, 어떤 의심도 없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죽음을 예감하는 상태에서 저렇듯 순수한 믿음을 피력할 수 있을까. 숨 쉴 틈 없이 밀려드는 고난 앞에서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은 욥의 심정일까. 지나간 모든 죄를 회계하고 용서를 빌던 어느 날, 하나님은 ‘죄’라는 건 없다는 목소리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스스로 어떤 이유도 찾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을 할 때, 그녀의 눈에 가득 일렁이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요양원에서 지낼 때 유난히 식탐이 많았던 환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너무나 행복한 느낌이 다가와 이 순간이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픔처럼 밀려왔다. 이 시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는 이 끈끈한 유대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은 더이상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 없다. 그녀 안에는 이미 그녀의 고통을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을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더 주고 싶다.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그녀를 괴롭히던 기침이 사그라들었다.


다섯 시 반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훠이훠이 앙상한 팔을 저으며 진지하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달음을 피력하는 그녀의 얼굴은 나의 동의에 힘입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요양원에 도착하여 헤어지면서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고마워, 친구야, 사랑해!" 그런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줄곧 휩싸였던 나는 힘껏 그녀를 껴안으며 말했다. “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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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보았던 새가 생각났다. 콩콩콩 꼬리를 땅에다 찍으며 차도에서 장난치듯 호로록 날았다, 앉기를 반복하던 그 작은 새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급히 나가느라 어질러진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주저앉았다. 참았던 울음이 쏟아지도록.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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