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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형(가운데)과 공범 여제자들

1980년대 초 도박에 미친 28세의 한 중학교 교사가 자신의 중학교 1학년 제자를 유괴, 살인한 뒤 암매장했다. 당시 전국을 뒤흔든 그 유명한 ‘이윤상군 살해사건’이었다.

 

범인 주영형은 엄청난 도박빚을 지자, 유복한 집안 아들인 윤상군을 유괴, 살해한 뒤 이후 1년여 넘게 윤상군 부모에게 100여차례 넘게 편지와 전화로 돈을 요구하다 결국 붙잡혔다.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고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ROTC장교 출신인 그는 범행에 자신이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여고생 제자 2명도 가담시켜 더욱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처음에 주영형은 사형을 면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사형이 확정되자, 기독교에 귀의하고 참회의 길을 걸었다.

 

그는 구치소에서 특히 20세 안팎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기독교를 전도하는 열렬한 신앙인으로 바뀌었다. 그는 처형 직전 이렇게 말했다.

“나로 인해 교직자의 이미지가 먹칠을 당한 것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 속죄하는 의미에서 나의 신체를 기증하겠다. 나로 인해 앞길을 망치게 된 학생들(두 명의 여고생 제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나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윤상이의 명복을 빈다."

주영형과 자주 만났던 한 여성 교화위원은 그가 평소 자기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이 아니고 묵묵히 듣는 편이며, 삶에 대한 의지가 없이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주영형의 유언에 이런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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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 / 네이버 지식백과

“노름에 손을 댄 뒤 돈을 잃고 화가 나서 술과 여자를 가까이했습니다. 월급으로는 이자도 못 갚아 결국 윤상이 유괴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만사가 잘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사위가 잘 굴러간다는 생각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지방 세무서장을 지낸 주영형의 아버지는 사형집행 다음 날, 통보를 받고 달려와서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어렵다."며 잔뜩 술을 마시고는 취한 상태에서 아들의 시신을 가져갔다.

살인자와 사형수들의 살인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1975년 부녀자 15명을 연쇄살인한 김대두처럼 1970-80년대 흉악범들은 대부분 못 살고 못 배우고 힘없고 무시당한 사람의 좌절, 분노를 극악무도한 형태로 표출했다.

그러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주영형은 허망한 방탕에 빠져 제자를 죽이는 패륜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를 통해 우리는 악의 씨앗이 바로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 있음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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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살인자의 과거 중에는 그 끔찍한 범죄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건이 있다.

그런 사건은 우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다가와 엄청난 일을 저지르도록 유도한다. 그럴 경우 과연 신은 어디까지 죄를 인정해줄 것인가.

나는 주영형의 케이스를 보면서 도대체 그의 인생에 어떤 굴곡, 사건, 트라우마가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아울러 우리 모두 내면에 있는) 악성(惡性)을 키우고 발현시켰는지가 궁금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의 끊임없는 충돌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사형수 취재를 통해 나는 그 복잡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인간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살인자나 사형수도 ‘별종 인간’이 아니다. 우리도 누구나 인생이 잘못 풀리면 김대두나 주영형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늘 조심해야 한다. 결국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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