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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2006 한국인 vs 일본인 (4)

싸우고 금방 화해하는 한국인

한번 다투면 평생가는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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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하다. 심한 조갈증에 찬물 한 사발을 들이켰다. 거울에 비쳐진 김과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전쟁터 패잔병 몰골이었다.

 

‘어제 얼마나 마셨지? 어디서 헤어졌지?’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왔다. 다나카 일행과 2차로 한남동 일본 가라오케 집까지 간 것은 기억나는데 그 후 필름이 끊어졌다. 갑자기 온 몸이 욱신거림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오른손 주먹 살집이 약간 찢겨지고 얼굴 왼쪽 이마에도 살짝 긁힌 자욱이 나 있다. 마치 누구와 주먹다짐을 벌인 듯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술집에서 누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나카가 중간에서 열심히 뜯어 말리던 모습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아. 내가 또 사고 쳤구나!'
김과장은 자기 머리를 쥐어 뜯었다. 창피할 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이 너무 미웠다.
‘하필 일본 친구들 앞에서 추태를…’  
회사로 가는 택시 안에서 김과장은 지갑을 꺼내 보았다. 신용카드 전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어제 1차 때 자신이 계산한 것인데 그렇다면 2차도? 기분 나면 남의 몫까지 몽땅 계산을 치르는 ‘나쁜’ 습관이 김과장에게는 있다. 다행히 2차 술값 액수를 삼등분한 정도의 금액이 찍혀 있었다. 안심됐다. 허지만 일말 서운하기도 했다.

‘1차 술값을 내가 냈으면 2차는 자기네가 계산해야 하는 것 아니야?’
다나카는 한기자와 동갑인 1966년생이다. 명문 와세다대를 졸업했고 집안도 좋은 수재형이다. 늘 예의 바르고 자기 심중을 잘 안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인이었다. 그런데 요즘 와선 직설적으로 변해 한국 비판을 자주 한다. 김과장과 허물없는 사이가 된 탓도 있고 스스로 한국화가 된 듯도 싶다. 김과장 입장에선 얄미우면서도 멀리 하기 어려운 존재다.
반면 김과장은 학교 때 공부보다는 운동이나 놀기를 좋아했던 스타일이다. 말썽도 피우고 수업 중 땡땡이를 치다 선생님에게 들켜 혼난 적도 여러 번 있다. 솔직하고 수더분한 성격에 정이 많아 따르는 친구들이 많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다혈질이라 회사 내에서 간혹 윗사람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먼저 출근한 다나카가 자기 방으로 오라고 슬며시 손짓을 했다.
“아이, 김과장 어젯밤 그러시면 어떡해요. 나 말리느라고 혼 났어요."
다나카의 볼 멘 소리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도무지 기억이 안나서…"
자초지종은 이랬다. 2차 가라오케 술집에서 김과장이 노래 부르고 있는데 술 취한 한국 손님 한 사람이 자꾸 무대에 올라와 방해를 했다. 빨리 내려가라는 것이다. 보다 못한 김과장이 노래를 부르다 그 손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그 바람에 양쪽 손님들이 달려 들어 난투극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내가 중간에서 막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정말 한국 사람들 너무 극단적이에요. 성질 잘내요."
평소 모션이 작은 다나카가 큰 제스츄어를 쓰며 말했다. 김과장은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욕 너무 잘해요. 그 욕들의 의미를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 질 정도죠.처음 한국에 와서 점잖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영어로 하면 ‘Jesus!’나 ‘Oh, My God’ 정도에 해당하는 감탄사 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뜻을 알고 보니 정말 기가 질리더라구요.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지금은 코흘리개 어린이들까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스스럼 없이 입에 담고 있죠. 아마 한국말 중 ‘욕’ 하나만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수준에 올라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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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의 계속되는 ‘열변’에 다소 열 받은 김과장이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일본사람들은 욕도 안하고 사는가 보죠?"
 “물론 일본 말에도 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심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바카야로’가 대표적 일본 욕인데 이 말을 한 자로 쓰면 ‘마록야랑(馬鹿野郞)’이죠. 즉 ‘말과 사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는 뜻이에요. 더구나 어른이 어린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카야로’ 할 때는 욕이 아니라 ‘귀여운 녀석’이라는 뜻으로 쓰이죠."
 다나카가 차분히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김과장은 자책을 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잘 다투는 편이다. 어젯밤 저녁처럼 모르는 사람끼리 술집 시비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식구들인 회사 내에서도 그렇다. 조용히 타이르면 될 것을 걸핏 하면 고함을 치고 후배를 ‘깨는’ 상사들이 적지 않다. 또 요즘에는 그런 상사의 말에 지지 않고 대드는 후배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과장 스스로도 그런 축에 속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김과장은 다 좋은데 가끔 성질을 못 참는다 말이야. 그것도 윗사람 앞에서. 사회생활에서 그런 점은 치명적이야."
 
김과장은 문득 대학 때 읽은 호모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의 몇 구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헐버트는 구한말 선교사로 지극히 한국을 사랑했던 친한파 인사였다.
“한국인은 진짜로 화나면, 제 정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생명 따위는 어떻게 되도 좋다는 상태가 되고, 어금니를 가진 동물로 변해버리고 만다. 입언저리에 거품을 물고 짐승 같은 얼굴이 된다.
비단 남성만이 아니다. 노여움에 사로잡힌 한국의 여자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3여신이 힘을 합쳐서 한 덩어리가 된 것처럼 무서운 광기를 발휘한다. 여자는 일어서서 엄청나게 큰 소리를 치며 떠들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심하게 기침이 나올 정도다.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이런 여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째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지 않는지를 이상하게 여길 뿐이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자기의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것 같다."
씁쓸한 기분에 김과장은 앞에 놓인 식은 일본 녹차를 훌쩍 들이킨 뒤 입을 열였다.
“일본 사람들은 잘 안 싸우는 편이죠? 화도 잘 안내고…."
다나카가 다시 반색을 하며 말했다.
“네. 일본인들 인내심이 강합니다. 일본 속담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죠. 안 지려고 바둥바둥하기보다는 ‘지면서 이기라’는 말이죠. 져야 할 경우엔 져주면서 실속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죠."
다나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서울에 와서 ‘은근과 끈기’라는 말을 곧잘 듣는데 일본 사람의 미의식은 ‘참는다’에 있습니다. ‘지면서 이긴다’도 같은 선상에 있죠. 즉 겉으로 어떻게 나타나든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어요.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희 생각이죠."
이야기가 왠지 철학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시간을 보니 오전 9시50분. 부장 주재 회의 10분전이다. 그냥 일어나기 허전해 김과장이 마무리 질문을 던졌다.
“허지만 일본인들도 싸움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습니까?"
빙그레 웃으며 다나카가 말했다.
“물론 하죠. 그런데 싸움하면 그걸로 두 사람은 끝이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과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한국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 큰 소리로 다투고, 또 모르는 사람끼리 멱살잡이하며 싸워도 나중에 화해도 잘하고 껄껄 웃고 술도 같이 마시잖아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게 안돼요. 한번 다투면 평생 말도 안하고 원수도 되죠."
“뭐라고요? 싸움 한번 했다고?"
김과장은 오히려 머리가 헷갈렸다.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들의 참을성의 미덕을 높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일상 생활에서 흔히 있는 다툼과 언쟁 때문에 평생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고 하니 얼마나 성가시고 에너지의 낭비란 말인가?
김과장의 이런 사고의 변화를 알아챈듯 다나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평소 서로간에 다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이날 오후 한기자가 회사를 찾아 왔다.
“근처 취재 나왔다가 들렸어."
“한선배. 우리 조선 사람들은 극단적 성격인가 보지?"
이유를 묻는 한기자에게 전날 밤부터 벌어진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한기자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산케이신문의 한국통 기자인 구로다 특파원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지.
‘일본은 사계절이 적당히 나뉘어져 돌아가는 데 비해 한국에선 봄과 가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리고 이내 찌는 듯한 여름, 혹독한 겨울이 된다. 즉 여름에서 겨울, 겨울에서 여름 식의 극단적 기후의 변화로 인해 한국인들은 극단적 성격을 가진 것 같다’
나는 되려 일본인들이야말로 극단적 성격의 소유자들로 보고 있네. 그네들이야말로 끝까지 가는 성격이지."
한기자는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 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가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한 나라, 한 국민이, 8·15(패전일) 후의 일본인만큼 철저히 굴복한 일은 역사상 그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맥아더의 말이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일본인의 전쟁 때와 후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었다. 전쟁 중 일본 군인은 이길 확률이 1% 없는 상황 속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극단적 저항을 했다. 투항 대신 집단자살을 택했다. 그러나 패전 후 일본인들은 예상과 달리 철저히 순종하는 자세를 보였다.
거리를 걷는 GI(미군병사)에게 비굴한 미소를 띠며 접근하는 사람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담배나 초콜릿을 무리하게 요구했다. 점령군에게 저항하는 사건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원자폭탄 세례를 받았고 어느 가정이라도 가족 중 한 사람 이상의 희생자가 난 처참한 전쟁이었는데 말이다. 연합군들에게 남편과 약혼자를 잃은 여자들은 자진해서 미군 병사들의 위안부로 전락했다.
 “과연 저들이 적 함대로 돌진해 장렬히 전사한 ‘카미카제(神風)의 나라’ 사람들이란 말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점령군을 환영한 예는 없었다. 맥아더는 이런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본인의 정신연령은 12세 수준 정도라고 생각했다. 전후 일본인들의 생활 양식도 재빨리 미국식으로 바뀌었다. 일본식 옷차림 대신 서양 옷차림이, 쌀 대신 빵이 각광을 받았다. ‘일본인은 왜 사과를 잘 하는가’라는 책에서 사와타 요타로(澤田洋太郞)는 “완강한 반미주의자일수록 패전 후 철저한 친미주의자가 됐다"고 했다. 모범생도 이런 모범생이 없었다.
맥아더 원수가 만 5년 8개월의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무려 200만 일본 시민들이 자진해서 연도에 나와 환송했다. 엉엉 우는 이들도 있었다. 도쿄의 고관 전부와 자위대원들이 비행장에 이미 나와 도열해 있었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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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들을 품에 안고 즐거워하는 미군들/ 경향신문

  

“저런 상황이 우리 같으면 이해가 되겠나? 바로 저렇게 극단에서 극단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야. 그래. 한국 사람들 성깔 있지, 싸우기도 잘 하고. 그렇지만 금방 풀려. 용서하고 미안해 한다고…."
“북방 몽골계 유목민 기질 탓 아닌가?, 신축자재의 성격, 툭툭 털고 다음 행선지로 달려나가는 유목민 기질 말일세. 반면 일본인들은 가슴에 쌓아두고 묵혀 두는 스타일들이지. 그러다가 터져 나오면 막혔던 물줄기가 용솟음치듯 매사 극단으로 치닫는 거야."
기자의 말에 김과장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러네요."
“이봐 김후배. 지금부터 일본을 눈 여겨 보라고. 1945년 패전 후 여태껏 숨죽이고 미국의 충견 노릇을 해오던 일본인들의 스트레스와 속마음. 그것이 21세기에 어떤 모습으로 폭발돼 나올 지 몰라. 그것도 모르고 북한은 20세기 고물 미사일 몇 방 가지고 일본을 상대로 ‘폭약 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츳츳"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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