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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연재 | 최찬희의 산중일기

잊을 수 없는 정원사 할아버지

최찬희 작가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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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앞마당에 백 년은 족히 넘은 듯한 둥치를 지닌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담을 두르고 있어 동네에서 소나무집으로 불린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이웃집들이 다 우리와 같은 수목을 자랑하는 주택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2층 테라스에서 옆집을 내려다보면 그 집 정원이 곧 우리 마당처럼 서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새들이 이집 저집으로 날아다니며 우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도심 같지 않은 전원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아름답던 집들이 모두 사라지고 빌라로 바뀌어 달랑 우리 집만 섬처럼 남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우리 집 뒤쪽 구역에 백 평이 넘는 단독 주택이 하나 있어서 위안이 된다. 혹시 그 집도 없어질까 은근히 신경을 쓰며 외출할 때마다 부러 그쪽 길을 택하곤 한다. 가을이 오면 늘 우리 집보다 먼저 가지치기를 한 그 집의 수려함을 보고서야 나도 서둘러 정원 손질을 할 정도로 잘 꾸며진 집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보기 좋았던 그 집마저 덜컥 팔렸다.

획일적인 모양의 빌라나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잘 가꾸어진 단독 주택은 각기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좋은 집들이 건축업자에게 팔리면 하루아침에 부서진다. 같은 동네에서 그 풍취를 완상하면서 걷던 즐거움마저 사라져 버린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집은 우리 동네에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였다. 담장 밖으로 늘어져 내린 영춘화가 노란 꽃잎을 터뜨릴 때마다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는 듯했다. 곧이어 붓끝처럼 오므린 꽃봉오리를 내밀던 진달래가 활짝 필 무렵이면 봄은 이미 지천으로 흐드러질 채비가 된 것이다. 칙칙한 겨울의 끝에서 보는 연분홍 진달래꽃의 산뜻한 느낌은 깊은 산골짜기에 수줍게 피어난 진달래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내 마음을 항상 사로잡았다.

그 집 마당에 우거진 다른 훌륭한 나무들보다 그 진달래꽃에 애착이 가던 나는 생각다 못해 그 집을 계약해준 이웃의 부동산중개업소 여사장을 찾아갔다. 기왕에 건축업자에게 팔고 가는 집이니 진달래 나무를 얻어 달라는 청을 넣었다. 얼마 안 있어 돌아온 답은, 이미 그 집을 오랫동안 관리해 온 조경업자에게 정원의 모든 수목을 양도하였으나 이웃의 부탁이니 그 진달래 나무만은 내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팔짝 뛰었다.

이윽고 그 집이 이사 가는 날, 새벽부터 굴착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정원수와 자갈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부산하게 윙윙거리는 소음을 무릅쓰고 인부 중 정원사임 직한 노인에게 진달래 나무를 가져갈 이웃이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노인은 주인에게 아무런 말도 들은 바가 없지만 정 원한다면 그냥 가져가라고 하신다. 부동산 여사장의 말과는 달리 주인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말에 내심 의아했지만, 저 큰 나무를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난감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노인은 성큼 인부를 한 사람 대동하고 부러 우리 집까지 오셔서 정성껏 심어주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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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핀 진달래 나무

 

그렇게 내 집 마당에 심어진 진달래 나무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튼실하고 키가 커서 마당 한 편을 보란 듯 환히 차지하였다. 자상한 그 어르신의 배려가 생각할수록 고마웠다. 나뭇값은 차치하더라도 수고비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약소하나마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들고 찾아갔더니 웬걸, 단박에 사양하신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간 후 할아버지는 담배를 한 개피를 입에 물으시며 “이런 담배라면 또 모를까, 돈은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으신다. 이때다 싶어 얼른 담배 이름을 여쭙자, 이제는 그것도 괜찮다며 담뱃갑을 주머니에 도로 넣어버리신다. 

이건 아닌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지만 도리 없이 고맙다는 말씀만 다시 드리고 돌아왔다. 진달래꽃은 그 집 담장 밖으로 활짝 고개를 내밀어 나와 마주치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집 마당에서 나를 맞이했다. 이제 한 식구가 된 듯, 앞으로 살갑게 정을 주고받을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커피를 내려 정원 의자에 앉아 진달래 나무를 바라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알싸한 기쁨이 진하게 솟구친다. 아, 진달래 한 그루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그런데 마음 한 귀퉁이가 계속 불편하다. 사십여 년이나 정원을 관리해 주셨다는 할아버지께서 나무를 심어주시는 내내 표정이 어두우셨던 게 생각난다. 돈이 아주 많다는, 그래서 그 아름다운 주택을 팔고 강남 어딘가로 이사한다는 집주인이 나뭇값으로 잔돈푼까지 쳐서 받는 바람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저 진달래 나무는 그 집주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정원사 할아버지에게서 얻은 셈이 아닌가. 게다가 직접 수고까지 해주셨는데 내가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다시 뵙고 고마움을 표시할 수도 없는 분인데 막연히 따뜻한 인정으로 간직하고 말기엔 뭔가 개운치 않았다. 내가 누리는 기쁨만큼 그 할아버지께도 즐거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에 담배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 담배 종류는 그리 많은지. 할아버지께서 잠깐 보여주셨던 그 담배와 비슷한 색깔과 모양의 것을 고르려니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다. 가게 점원은 자꾸 담배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걸 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는가. 석연치는 않았지만, 얼추 이거다 싶은 것을 사서 아까 드리려던 봉투까지 얹어서 다시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인부들과 할아버지는 벌써 일을 끝내고 모두 철수한 게 아닌가. 낭패였다.

어떻게든 건네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웃의 부동산중개업소를 다시 찾아갔다. 팔고 간 집주인을 통해서라도 정원사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그 부동산중개업소의 여사장이 그 집주인은 자기 대(代)에서만 잘 먹고, 잘 살고 말 파렴치한 인간이라며 험한 말을 퍼부었다. 

보아하니 집주인이 중개수수료를 깎으려고 몇 시간이나 버티고 앉아 있는 바람에 마음 약하고 성질 급한 여사장이 그만 감정을 상한 모양이다. 결국, 부자는 수수료를 원하는 만큼 깎고 돈 없는 자기만 손해를 봤다는 푸념을 하며 붉으락푸르락 거린다. 그런 그녀를 통해 집주인에게 부탁해 전화번호를 알아내긴 글렀다.

돌아서는데, 사십여 년이나 정원을 돌봐 준 할아버지께도 주인이 저런 식으로 서운케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있는 나무마다 값을 매겨 잔돈푼까지 다 받아내던 그 주인에게 몹시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부동산 여사장과는 달리 천천히 혼잣말하듯 하시던 그 목소리에 왠지 나까지 미안해졌다. 그렇게 좋은 집에 살던 그 주인은 연세가 일흔여섯이나 된다는데 왜 그렇게 인색하여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놓고 떠났을까. 그 집주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까지 괜히 부아가 난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잠깐 잊었던 진달래 나무가 한껏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반긴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나무가 아닌, 정원사 할아버지의 얼굴로 환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꽃이 아닌, 작은 느낌표를 던지는 얼굴이다. 부자의 얼굴에서는 나올 수 없는 그 잔잔한 느낌표 하나 덕분에 삶은 다시 온화해진다. 훤칠한 체격의 그 할아버지만큼 진달래도 우리 집 울타리 밖으로 자라나 그 느낌표를 무수히 전해줄 것이다. 미국에 이민 떠난 지 삼십 년이 넘도록 진달래꽃을 그리워하셨다는 큰 시누님께도 전해드려야지.

아, 그런데 이 고마운 마음을 할아버지께 전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어쩔거나! 나 혼자만 담배를 들고 혼자 서성거리는 모습이라니! 해는 벌써 기울어지고.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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