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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연재 | 최찬희의 산중일기

다투는 동네 할아버지 vs 말리는 아낙네들

최찬희 작가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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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면 이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마을 초입에는 폐가가 한 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폐가는 아니지만, 사람이 살고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이 드는 집이 한 채 있다. 


다 쓰러져 간다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고 튼튼하다고도 할 수 없는 슬레이트 지붕에 듬성듬성 구멍이 생긴 흙벽, 산에서 잘라온 듯한 나무를 기둥으로 받친 처마 아래 간신히 내단 툇마루가 있다. 세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을음만 가득한 부엌. 툇마루를 가로질러 늘어진 빨랫줄에는 언제나 똑같은 수건이 한 장 널려 있다. 벽에 걸린 붙박이 거울처럼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고요하다. 


그 집에 노인이 한 분 계신다. 사람들은 그를 심씨 노인이라 부르며 오로지 술만 드신다고 했다. 가끔 뒷길로 올라가는 동산에 뭔가를 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지만 동네 누구도 말을 걸거나 붙이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내가 지나가다가 툇마루에 앉아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안녕하세요?’ 해도 잠잠하다. 다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오~’해도 마찬가지다. 장난기가 발동한 건 아니지만 혹시 가는 귀를 잡수셨나 싶어서 다시 ‘안녕하세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잠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다가 다시 슬그머니 외면한다. 오호, 들리긴 하시나 보다.


십여 년 전, 혼자 이곳까지 올라와 비어 있는 농가에 의탁해 지금까지 살게 된 노인은 젊어서는 그래도 힘깨나 쓰면서 농사 일품을 팔았지만, 지금은 알코올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봄날은 그도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가게 만든다. 뒷산을 개간해 밭을 만든 곳에 지게를 지고 가서 하루를 보내고 내려오면 잠시 그 집에도 생기가 감돈다. 그러다 전깃불이 꺼지면 이내 어둠 속으로 잠긴다. 도대체 밥상이 들락거리는 모습은 통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시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 날, 그 집 옆에 있던 공터에 큰 컨테이너가 들어오고 못 보던 할아버지가 오셨다. 다음 날, 그 할아버지는 부인인 듯한 할머니와 함께 왔다. 컨테이너 앞으로 마루를 잇고 차양막을 치고 수돗가를 만들고 마당에 솥단지를 걸었다. 그리고 길 건너 아랫 마당에 닭장도 순식간에 뚝딱 지었다. 그리고 마당에서는 고기를 삶고 막걸리를 따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좁은 마루지만 잔칫상이 벌어졌다. 


할머니는 바로 옆집 툇마루에 계시던 심씨 할아버지를 부르러 갔다. ‘아저씨, 밥 무러 오이소!’ 할아버지는 예의 그 표정으로 또 아무 말이 없이 마루만 쳐다보신다. 할머니는 다시 ‘밥 무러 오이소!’ 그래도 외면하자 다시 한번 ‘할배요! 밥 무러 오시라꼬요!’ ‘보소! 마 밥 무라니께!’ ... ‘밥 무라꼬오요오오~!’ 말 없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으신다. 


하루는 맨 윗집인 주씨 할매 집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술렁거렸다. 그날 밭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건넌방에 심씨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사람들을 불렀는데 알고 보니 쓰러진 게 아니고 방에 있는 토종꿀 한 병을 다 동내고 속이 늘그래해져 잠이 드신 거다. 


평소에는 말도 없더니 그 집에 꿀단지가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이 혀를 차며 웃었다. 평소에는 그림자처럼 지내다가 가끔 취기가 발동되면 집집마다 다니며 술을 달라고 했다 한다. 아마도 인심 후한 그 집에 술 찾으러 갔다가 술 대신 꿀단지를 동낸 것 같다. 


그다음 날도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술을 좋아하면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데 원래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그 노인은 전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집 마당에는 붉은 목단꽃이 만발해 있다. 


 내가 있는 집 주인인 뒷집 할아버지는 살집이라곤 없는 깡마른 작은 체수의 노인이시지만, 오토바이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 심부름을 잘 해주신다. 특히, 앞집 아주머니가 원하시면 아랫마을 농협공판장에 사놓은 물건을 실어다 주곤 하셨다. 이 높은 산중에서 혼자 사시는 분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다. 항상 조용조용, 웬만해선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는 노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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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의 고함이 들렸다. 언뜻,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는 ‘나아를 직이라아!’의 반복이었다. 방안에서 시작한 그 비명 같은 외마디소리는 집 밖으로 나와 동네 길에서 계속되었다.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보라는 듯,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땅바닥을 치면서 점점 톤을 높인다. 


 “이 드러븐 세상! 내가 죽을 데가 없어 이 골로 들어왔나! 이 드러븐 세상에 내가 우찌 살았는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아!’ ‘그래 내에가 죽을 데가 없어서 여기 왔다 그래! 나를 직이라아!"


그래도 동네는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잠시 멈춘 소리가 다시 반복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더욱 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동네는 대낮의 정적을 깨지 않았다. 나는 창문 밖으로 동정을 살피기만 할 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무리 주인집 할아버지라도 동네 물정 없는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 드디어 앞집 쉼터 여자가 나왔다. 곧이어 돌복숭아 집 아지매가 나오더니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윗집 황씨 할머니의 아들이 당신에게 퍼부은 욕을 그대로 흉내 내며 하소연했다. 

 

“그래 석준이 글마가 아랫집 총각이랑 와가 방을 한 달 더 있게 하라캐가 하마 내가 안 된다카이, 고마 내보고 말 안 들으모 이 동네서 못 살기라카면서 고마 죽고 싶나, 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삔다 안 카나! 앞집 기봉이도 와 지가 넘의 집을 주라마라캐쌌노 그캤고마! 내가 30년 전에 이까지 올라와 죽을라캤고마, 이자 죽이준다니 을매나 고맙노! 마아 고마 직이라, 내를 직이라아아!’ "


길 아래쪽에 허름한 집이 한 채 있는데 할아버지가 어떤 총각한테 세를 주셨나 보다. 아마도 그 집 때문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30년 전에 이 산등성이로 들어오셨을 때는 땅값이 거의 없다시피 한 화전민들의 집을 몇 채 사놓으셨던 곳을 수리해 알음알음 세를 받으셨던가 보다. 달 세가 얼마 되지 않아도 꼬박꼬박 세가 안 들어오면 누군들 다시 방을 주겠는가. 해서 그 총각이 윗집 황 씨 할머니 아들한테 가서 말 좀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조금 대강의 사정이 이해가 갔다. 

 

마을의 좁은 길에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웅성거린다. 그동안 못 봤던 목사 사모님도 산등성이에서 내려오고 드디어 윗집 황 씨 할머니와 그 아들도 나왔다, 마흔 중반인 그 아들 석준은 이혼하고 혼자 외지에 사는데 지금은 봄 매실 농사 때문에 와서 엄마 일을 도와주고 있다. 


 “할배요, 내가 언제 그캈다고 이래쌌소! 마 어차피 비와놀 방이라카이 고마 한 달 더 주면 어떻노 그란 걸 가꼬 시방 뭐라카싸소!" 


오히려 화를 더 내며 고함을 치자 싸움이 크게 벌어질 것 같다. 그러자 앞집 쉼터 여자와 돌복숭아집 아지매랑 황씨 할머니가 서로 말리며 가운데로 들어섰다. 역시 세상에는 여자들이 있어야 한다. 동네 위뜸에 떨어져 살던 주씨 할머니도 내려와서 양쪽으로 나뉘어서 뜯어말리니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서로 양쪽으로 대치하며 각자 소리를 치다가 황씨 할머니와 아들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할아버지도 방으로 모셔서 들여놓고서야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길에는 쉼터 여자와 돌복숭아 집 아지매가 위뜸 주씨 할머니랑 팔짱을 끼고 서서 웅성이고, 목사 사모님과 아랫터에 새로 앉힌 콘테이너집 할머니는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조근조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바람에 나는 창문을 통해서 못 보던 동네 여자들 얼굴을 다 보았다. 부산에 산다는 목사 사모님은 가끔 와서 산등성이 초가집에서 잠시 지내다 가는데 오늘에서야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큰소리가 나도 어느새 조용해진 걸 보니, 어딜 가나 여자들이 있어야 세상이 구순해진다. 산골의 하루가 긴듯하면서도 너무 짧다.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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