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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16)

안가랑江에 드리워진 혁명의 희미한 그림자

사랑과 유형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송종찬 시인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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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성당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과 혁명은 비슷하다. 사랑을 모르는 자는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없고, 사랑이 없는 혁명은 정의롭지 못하다.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은 특별한 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대의 코드였다. 입학도 전에 선배들이 술집에서 사회구성체, 변증법 등 현란한 사회과학 용어를 쓰며 정의를 이야기할 때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무서울 게 없는 때라 사랑과 혁명은 함께 왔다. 입시로 억눌렸던 사랑의 감정이 혁명이란 단어 앞에서 꽃망울을 터트리곤 했다. 실제로 데모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감방에 들어가면 여학생도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운동권 여학생을 좋아해 법전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 돌을 던지던 친구도 있었다. 사랑을 위해 혁명의 길로 나서고, 혁명을 위해 사랑을 선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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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레닌 / 출처 : 브리태니커 홈페이지

러시아에서 사랑과 혁명은 기차의 선로처럼 나란히 간다는 걸 다시 알았다. 혁명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레닌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레닌에게 두 여인이 있었다. 레닌은 전제정치에 저항하다 교수형을 받은 알렉산드르 형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혁명의 길로 나섰다.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던 초기에 야학선생이었던 크룹스카야를 운명처럼 만났다. 두 사람은 전제정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네바강 가의 골목길을 옮겨 다니며 사랑과 혁명을 키워나갔다. 

레닌이 반체제 혐의로 체포되어 동시베리아의 예니세이로 유형의 길을 떠날 때 크룹스카야도 함께 가서 유형생활을 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결혼까지 했지만 레닌에게 그 사랑이 전부는 아니었다.

5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 프랑스 망명 중 레닌은 이네사라는 새로운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프랑스 태생으로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지만, 레닌에 끌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혁명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통해 혁명에 가 닿았고, 혁명을 함께 하며 사랑의 불씨를 키워 나갔다. 1918년 암살사건으로 레닌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때 병상으로 불렀던 사람은 부인이 아니라 연인이었다. 목숨까지 걸고 유형의 길을 자처했는데 아내인 크룹스카야는 얼마나 절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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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소녀들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절망의 강도를 모르겠다. 세상에 사랑만큼 허망한 약속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의 맹세를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처럼 받아들일 때가 많다. 어쩌면 사랑의 맹세는 가장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아서 ‘사랑해? 사랑해?’라고 묻고 또 묻는지 모른다.

시베리아 유형지의 한 곳인 이르쿠츠크는 혁명과 사랑의 도시이다. 아니 사랑과 혁명의 도시로 불러도 좋다. 이곳에서는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자락도 시적(詩的)이다. 카메라 감독이 되어 사랑과 이별의 장면을 촬영한다면 주저 없이 이르쿠츠크를 선택하고 싶다. 그 이유는 바이칼호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고, 혁명가의 눈물과 사랑의 흔적이 올올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으나 대패하고 엘바섬에 유배된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러시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가 자유주의 물결이다. 1825년 12월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이 열리던 날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전제정치 청산을 위해 거사를 준비했으나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젊은 귀족들은 하루 아침에 반란자가 되었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혁명을 시도했던 이들을 데카브리스트, 즉 12월 당원이라고 불렀다. 쇠사슬에 묶인 채 마차에 실려 곳이 바로 이르쿠츠크였다. 유형자의 대부분은 신혼생활의 단꿈에 젖어있던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의 이별은 길지 않았다. 12월 당원의 부인들은 짜르에 충성하는 조건으로 귀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모든 걸 내던지고 반역의 길로 나섰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세월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자갈밭을 일궈 농사를 짓고, 시베리아의 밤 기운을 이기기 위해 통나무집을 지어야 했다.

시베리아 유형지는 벽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걸 내려놓고 동토 위에 뿌리를 내리던지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생존을 넘어 문화의 꽃을 피웠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이르쿠츠크에는 데카브리스트의 한 사람이었던 발콘스키가 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남아 있다. 박물관에는 그들이 읽던 문학작품들과 연주회 때 사용하던 악기들이 남아 있다. 실제로 발콘스키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모델이었다. 귀족의 딸이었던 아내 마리아는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 유형을 자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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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라 강에서 바라 본 이르쿠츠크 전경

 

이르쿠츠크를 방문할 때마다 안가라 강변을 걸었다. 바이칼호수로 336개의 강물이 흘러 드는데 비해 호수에서 빠져나가는 강물은 안가라강이 유일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바이칼을 빠져나오는 안가라강처럼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었을 것이다. 강물 위에 종이 편지를 띄워놓고 5천km 밖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귀족도 농노도 없는 차별이 없는 세상이었다. 비록 혁명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되고 시가 되었다.

강 너머에서 석양빛을 받으며 모스크바로 떠나는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했던 젊은 청년들. 세상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사랑을 찾아 나섰던 여인들. 

언젠가 선배 한 분이 물은 적이 있었다. 밥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나는 배고픔의 극한까지 가보지 못했고, 죽도록 사랑해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고 물음에 비껴갔다. 사랑은 혁명을 낳고 혁명은 사랑을 완성한다. 두려움에 떨던 나는 혁명도 사랑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안가라강에 기적이 울릴 때

 

가라 가라 손짓하여도

뒤돌아서지 않는 자작나무처럼

가라 가라 눈짓하여도

맨발로 뒤따라오는 앙가라 강물처럼


혁명이 별것이라더냐

손 흔드는 그대 얼굴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목숨이 타 들어 가는 것


구름 속을 나는 새의 부리에 노을을 찍어

붉은 잉크로 쓴다

반란이여


백야의 숲 너머

어머니의 강 끝으로 밥 짓는 연기 몰려가고

불 꺼진 창가에 깃드는

들꽃들의 망명


가라 가라 손짓하여도

끝끝내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오는

시베리아의 눈발처럼

가라 가라 눈짓하여도

먼 기적소리로 들려오는

살얼음 어는 그대 심장의 고동처럼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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