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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14)

입대 전 아들과의 특별한 여행

발트3국 보며 마음의 국경 허물다

송종찬 시인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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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전경

금요일 밤 브누코바공항에서 탈린행 비행기를 탔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아홉 시간이 걸리는데, 인접 국가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까지는 불과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러시아에서 1천km가 넘지 않으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러시아의 동과 서를 횡단하다 보면 한국은 국가가 아니라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입대를 앞둔 아들과 여행을 계획했다. 사춘기가 지나도록 어지간히 속을 썩이던 녀석이다. 돌아보니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나 했을 뿐 아버지로서 딱히 잘해준 것도 없었다. 코스를 어디로 잡을까 고민하다가 모스크바서 멀지 않은 발트3국으로 잡았다. 발트3국은 인구 1백만에서 3백만 내외의 소국이다. 이들은 소련에 속했다가 1991년 냉전의 종식과 함께 독립한 국가들이다. 

여행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인터넷을 뒤적여 보아도 마땅한 정보가 없었다. 티켓만 사고 무조건 떠나자고 했다. 아들에게도 여행정보를 찾는 수고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견뎌보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작은 나라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번잡스럽지 않은 곳에서 아들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

탈린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는 의외로 까다로웠다. EU 회원국이기도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탓에 모스크바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핀란드만이 펼쳐지는 작은 호텔에 방을 잡고서 아들과 단둘이 누웠다. 트윈 침대에 각각 누웠지만 호텔 방에 둘만 있으니 편하지 않았다. 성년이 되도록 아들과 단 둘이서 잠을 자본 기억이 없었다. 아들과 나 사이에는 러시아와 발트3국처럼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 있었고 서로 긴장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나는 자본을 가진 강자로서 일방적인 기준을 제시했고 아들은 이에 맞서 자기의 길을 고집했다.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탈린은 아담하고 소박했다.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중세풍의 골목과 돌담길은 프라하를 축소한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툼페아 언덕에서 핀란드만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성당의 첨탑과 붉은 지붕들이 한 눈에 펼쳐졌다.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오래된 성곽과 골목길의 반질반질한 돌, 건물마다 보석처럼 박혀있는 작은 상점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 동안 수많은 전쟁이 있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도시가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와 구시청 광장에 섰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청년이 자신이 일하고 있는 카페로 이끌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마다 핀란드만의 강한 바람에 파랑, 하양, 검정이 줄무늬를 이룬 3색기가 펄럭거렸다. 검정색은 불행의 상징으로 국기에 잘 안 쓰는데 에스토니아인은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검정색을 쓰고 있었다. 인구 130만의 작은 국가에도 자국의 언어가 있고, 문화가 있고, 군대도 있었다. 어쩌면 아들도 에스토니아인처럼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나절 탈린 시내를 둘러본 후 이층버스를 타고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갔다. 처음 타 보는 유로라인 버스는 쾌적했다. 버스 안에 커피 자판기가 있고, 모니터를 통해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승객들이 국경도 없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발트인은 우리보다 더 큰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12-13세기경 독일과 발트해 연안의 도시들은 정치, 군사적 연합체인 한자(hansa)동맹을 결성하여 서로를 보호했다. 생존을 위한 약자들의 동맹이었던 셈이다. 리가는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발트국가 중에서 가장 번성했다. 리가의 구시가지에는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피터성당과 무너진 성벽이 있었다. 리가 시내를 가로지르는 다우가바(Daugava)강이 있어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다시 야간버스를 타고 마지막 행선지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로 향했다. 창 밖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어둠 속을 통과하면서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침묵했다. 와이파이가 접속돼 걱정하고 있을 아내에게 아들과 여행을 잘하고 있다는 건조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빌뉴스에 도착하자 밤 10시가 되었다. 호텔에 대충 짐을 풀고 거리의 식당으로 나갔다. 토요일 밤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빌뉴스에서 받은 첫 인상은 미인이 많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 미인을 흔하게 보아왔지만 리투아니아 여인들은 슬라브족과 게르만족의 장점을 섞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일요일 아침, 구시가지 쪽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관광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새벽의 문을 통과해 자갈길을 내려왔다. 기적의 문 2층에는 검은 얼굴을 한 성모상이 있어 기적의 교회로 불리고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문 옆에 서 있는 소녀에게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시청 앞까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왔다. 북카페에 들러 잠시 커피를 마신 후 빌뉴스 시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게디미나스(Gediminas)성에 올랐다. 붉은 지붕 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올 때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3박4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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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트라카이성

3일에 걸쳐 하루에 한 나라씩 세 나라를 거치다 보니 어느 정도 발트 지형에 익숙해져 펜을 준다면 대충 하나의 도시를 완성할 수 있을 듯했다. 밤 비행기를 타려고 준비하면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나라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큰 나라에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스치듯 둘러본다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했다. 사실 크나 적으나 한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똑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나 역사는 국토의 면적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시장 한번 들르지 않고서 어떻게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989년 발트 3국의 시민들은 소련에 저항해 탈린-리가-빌뉴스를 잇는 620km의 인간띠를 만들며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여기에는 200만명이 참여했고, 저녁 7시 교회들은 일제히 종을 울려 자유를 알렸다. 이를 기념하는 발자국이 라트비아 리가의 자유의 여신상 앞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나도 아들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 철부지일 줄 알았는데 3일 동안 여행하면서 아들은 이기적인 나보다 훨씬 인간적인 내면을 갖추고 있었다. 그간 부모에게 대들었던 것은 자유를 달라는 외침이었을지 모른다. 아들과 함께 한 삼일 동안 서로의 짐을 들어주고 차를 함께 마시며 우리는 서로의 국경을 넘나들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과거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발트3국에 고유의 문화와 언어가 있었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고유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의 세계는 막 자라난 나무들로 싱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숲에 고속도로를 깔고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나의 조언은 상투적이었다.

런던으로 배낭 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300달러를 쥐어주면서 “이제 너는 자유다. 맘대로 살아라, 다만 언덕이 되어 줄 테니 힘들면 기대면 된다"라며 안아주었다. 처음으로 아들 심장의 고동소리가 느껴졌다. 자정을 넘긴 시각 공항은 한산했고, 모스크바행 터미널로 돌아서는 마음은 가벼웠다.



마음의 국경

 

유로라인 버스를 타고

아들과 처음으로 나선 둘 만의 여행길

한 방에 둘만 누워있는 게 서먹서먹하다


한 집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았던 걸까


잔소리 대신 가만히 등을 기댈 수 있는

언덕이나 되어 줄 걸 그랬어

아들은 아버지의 식민지가 아닌데


비자도 필요 없는데

둘 사이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국경선

한 울타리에 살면서

서로의 언어는 얼마나 달라져 있던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소국의

국경의 넘으며

아들의 국경 안으로 들어가 보았네


비밀의 정원 속에는

야생의 꽃나무가 자라고

성당이 있고 사랑의 강이 흐르고 있었네


파도 거센 날

등대처럼 반짝여주기나 할 걸 그랬어

세상은 어항 속이 아닌데


자정 넘은 공항 대합실

처음으로 안아본 아들의 심장소리

이제부터 너는 자유다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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