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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우울증이 주는 축복과 선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질문 3가지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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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쳐 부르고 어깨를 두드리고 돌을 던져도 소용없자 인생은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핵폭탄을 터트렸다. 그것은 나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를 돌려세워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었다.

- 파커 J. 파머《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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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언제 감았는지 모르는 부스스한 머리, 생기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표정. 상담실에서 처음 만난 세은 씨는 마치 내일 죽어도 덤덤히 받아들일 것 같이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연구소를 찾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했다며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내가 권한 따뜻한 차 한 잔도 외면한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가 응시하는 곳을 따라가 보았다. 창 밖의 날씨는 그녀의 기분을 살피지 못한 채 눈부시도록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었고 5월의 푸릇한 나무와 풀들은 신선함과 강인함을 뽐내고 있었다.

“눈이 부시면 블라인드를 조금 내려드릴까요?"

상담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첫 마디를 떼었다. 그녀는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했고, 우리의 ‘위대한 침묵’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혼 4년 차인 그녀는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엄마였고, 그녀의 남편은 강남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성형외과 전문의로 능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그녀의 친정 부모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그녀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는 어떤 어려움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일까?

 

세은 씨의 우울증은 아이를 낳고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합격했다. 그리고 현재 남편과의 만남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탄탄대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이후 그녀에게 찾아온 정체성의 혼란은 그녀를 뒤흔들어놓았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채로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일 때문에 매일 같이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달라고 호소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완벽한 엄마, 아내 노릇을 하려고 애썼고 시부모님께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며 살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들, 자기관리를 잘하는 엄마들이 넘쳐났고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위축되었고 우울감은 커져갔다.


“선생님, 제 삶이 껍데기처럼 느껴져요." 

나는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빛으로 지지를 보냈다. 그녀는 이제껏 자신이 살아온 삶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이었고,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마치 연극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연극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허탈했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괴롭다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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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오는 내담자들은 우울, 강박, 무기력함, 불안 등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들을 호소한다. 그중 단연 많은 케이스는 우울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고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만 못나 보일 때, 무기력하거나 마음이 공허할 때, 심리적 좌절을 겪을 때 우울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정신과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낯설어하고 괴로워한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아픔을 호소하기보다는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나는 세은 씨와 같은 사람들을 상담실에서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이 우울증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을 축복해주고 싶기도 한다. 우을증이 온 것을 축복한다니, 누가 들으면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이 궤변을 늘어놓는다며 혀를 내두를 수도 있겠다. 우울증의 다른 말은 ‘잘살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을 때 우울해진다. 우울한 사람은 더 우울하기 위해 상담실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무기력한 모습이 아닌,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상담실에 온다.

5월의 푸르른 봄에 만난 세은 씨도 겉보기에는 우울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삶을 활기차게 살고 싶고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으리라. 그 모습을 만나지 못한 채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만 보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구제해줄 누군가를 찾는다. 우울증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생명의 끈과 같다. 간절히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녀와는 6개월 정도 상담을 이어갔다. 그 만남 동안 세은 씨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녀의 우울증은 우리가 만난 지 두 달이 지날 때쯤 대부분 호전되었다. 그녀는 약물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했다. 물론 이따금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있었지만 바닥까지 파고들어 갈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상담에서 그녀에게 준 도움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로 하여금 사람들이 씌워준 ‘껍데기’를 벗고 자신을 발견하도록 한 것, 그리고 그녀만의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운 것뿐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쉽게 무너지고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포로로 끌려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을 마주하며 경험했던 통찰이었다. 그는 ‘사느냐 죽느냐’는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상은 그가 창시한 로고테라피(Logotherapy), 즉 ‘의미치료’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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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의미’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자기 나름의 의미가 있어야 하고,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껍데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의미는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찾아야 한다. 부모나 주변 사람이 부여해준 것이 아닌, 스스로 찾은 삶의 의미만이 나를 실존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찾아온다. 나도 오랜 시간 우울증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우울증은 신이 내려준 동아줄과도 같았다. 그만큼 잘살고 싶고, 의미 있게 살고 싶어서 힘들었던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선물 덕분에 나는 나만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우울증이라는 핵폭탄은 당신을 죽이기 위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신을 돌려세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최후의 노력이다.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울증 뒤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질문 3가지〉

1.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가?

2. (1번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면) 내가 진정 피하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가?

3.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달(혹은 이번 주)에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적어보자.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적당한 거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글에 소개된 사례는 내담자의 동의를 받아 작성했고 privacy를 위해 가명 사용 및 일부 상담내용을 각색했습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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