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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 2006 한국인 vs 일본인 (3)

"한국 사람들 정말 포그탄주 좋아해요"

말리는 다나카 태도에 더 화가 난 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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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퇴근 길에 김과장은 회사 로비에서 다나카 고문과 마주쳤다.

“어 김과장. 며칠 만입니까? 혹시 약속 없으시다면 저녁 어떠십니까?"


어쭈,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가 보지. 밥 먹자고 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과장은 활기차게 말했다.

“그래요. 한 잔 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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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다나카와 간 곳은 회사 사람들과 자주 가는 종로 1가 한일관이었다. 불고기를 시켰다. 그런데 건너편 저쪽 테이블의 예닐곱 살 사내아이가 심하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테이블 사이를 마구 뛰어 다니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데 김과장 또래의 30대 후반 부모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김과장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국인끼리도 눈살을 찌푸릴 광경인데 지금 옆에 다나카가 있지 않은가. 요즘 들어 그는 부쩍 한국에 비판적이다. 사실 다나카의 말은 논리적으로 틈새가 적어 반박하기 어렵다. 심정적으로 동감하긴 어렵지만 맞는 말이 대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나카는 소란 부리는 아이와 부모를 번갈아 가며 원래 작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허 참, 김과장. 부모가 아이를 저런 식으로 내버려 두면 안되죠."

 

다나카의 한심하다는 듯한 코멘트에 김과장은 시큰둥하지만 맞장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말이에요…. 일부… 저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나카가 말꼬리를 잡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일부가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 자주 그래요. 도대체 남 눈치를 보지 않아요. 아파트에서도 밤에 잘 시간에 쿵쿵 왔다 갔다 하죠, 문을 쾅 닫죠, 심지어 부부싸움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리까지 들려요. 우리 일본에선 밤 10시가 넘으면 아파트에서 샤워도 안 해요. 물소리가 시끄럽고 성가시게 들리기 때문에…"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 김과장이 말을 끊었다. 

“아니 그게 감옥이지 뭐예요. 살살 목욕하면 되지 이웃간에 뭐 그리 잔 신경을 쓰고 삽니까?"

 

바로 그때 아이가 큰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김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그렇게 뛰어다니면 어떡하니. 좀 조용히 있거라!"


힐끗 보니 아이의 어머니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김과장은 내친김에 부모를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저런 식으로 놔두면 되겠어요?"


아이 어머니가 앙칼진 목소리로 받아쳤다.

“쬐끄만 아이가 그런다고 뭐 그렇게 심하게 하세요. 조용히 타이르면 될 것을…흥!"

“뭐라구요. 그럼 잘…했-다는-꺼요?" 


흥분해서 그런지 김과장의 혀가 꼬였다. 주변 손님들이 모두 쳐다본다. 옆에 있던 다나카가 말린다. 

“김과장. 진정하세요. 참으세요…"


다나카의 말리는 태도에 김과장은 더욱 화가 돋았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격이랄까. 

‘제기랄, 며칠 전에는 뭐라고 그랬어. 일본에선 공공질서를 안 지키면 타이어도 펑크 내고 차 유리창도 박살낸다고? 근데 지금 태도는 뭐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친구…’


그러나 김과장은 차마 이 생각을 말로 나타낼 수는 없었다. 대신 눈을 부라리니까 다나카가 타이르듯 말한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화를 내면 안되죠. 충고를 줄 때 상대방에게 빌미를 주면 안돼요. 예의를 지키라면서 정작 본인은 예의를 안 지키고 말한다면 수긍하겠습니까?"


다나카는 확실히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남에 일에 참견하고…. 김과장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일본 사람들은 예의가 바른 모양이죠?"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죠. 아까 상황이라면 일본 어머니는 아이 빰을 때리며 훈계할 겁니다. 반면 한국에선 아이들을 제멋대로, 마치 망아지 방목하듯 키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말이예요. 때문에 커서도 남을 배려하지 않고, 공중도덕 관념도 부족하죠. 도대체 남을 개의치 않아요. 얼마 전 추석 귀경길 쓰레기 사건 아시죠? 반가운 일가친척 만나고 조상에게 감사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왜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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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은 낯이 뜨거워졌다. 다나카 말이 틀린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남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조차 한국 사람들끼리는 잘 모를 때가 많다. 어느 정도 서로 눈치 안보고 행동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웬만한 불편은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일본 가면 느낀다. 온천탕에 철벅거리고 들어가 ‘어 시원하다’고 떠들다 주변으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전철에서 앉을 때도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털썩’ 앉는 법이 없다. 매사 조심이 몸에 배 얌전하게 앉는다.

 

김과장은 그런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중학 시절 ‘영감님’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모범생’ 반장 친구를 연상했다. 깍듯하고 착실하고 잘못이라곤 요만큼도 못할 스타일의 친구 말이다.

 

그때 다나카와 잘 아는 요시다(吉田) 사장이 식당에 들어왔다. 50대 중반의 요시다는 일본 중견 기업의 한국 지사장으로 이미 2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고 부인도 한국인이다. 한국 사회를 한국인 뺨치게 잘 아는 ‘능구렁이’다. 

“아. 안녕하세요. 김과장. 허허"


김과장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오늘 합동공세로 당하겠군’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과장이 저녁은 들었냐고 물었다. 

“네. 술이나 한잔 들면 됩니다."

이미 한잔 걸쳤는지 얼굴색이 벌건 요시다 사장에게 김과장이 선수를 쳤다.

“오랜 만에 뵙는데 우리 사이에 폭탄주 한잔 안 할 수가 없겠죠." 

“포그탄주? 아. 무섭습니다. 한국 사람들 정말 포그탄주 좋아해요. 너무 과격해요."

 

손사래를 치는 요시다. 그러나 전혀 싫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소폭’을 돌리며 김과장은 다나카에게 속에 있는 말들을 뱉어냈다.

“나는 일본 사람들의 그 지나친 조심성, 예의 바름이 싫어요. 항상 주변 눈치부터 먼저 보고 남을 의식하고….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디 있나요? 개인의 독자성은 어디 있죠?"


김과장의 도발적인 발언에 의외의 표정을 지었던 요시다 사장은 다나카의 빠른 일본어 설명을 듣고 알겠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에 주재하는 우리 일본 기업인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차(지하철)를 타려고 달려왔는데 눈앞에서 문이 닫혀 타지 못했다, 이럴 경우 일본, 미국, 한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관한 겁니다. 아마 일본인들은 곧 주위 사람을 둘러보고 히죽히죽 겸연쩍어 웃을 겁니다.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꼴불견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우선 남의 눈을 의식하는 반응이죠.

미국인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순간 하늘을 쳐다보고 ‘오 마이 갓’이라며 담담하게 체념할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타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겠지요.

그러면 한국인은 어떻게 할까요? 아마 차장에게 큰 소리로 불평이나 욕을 던지지 않았을까요? 남의 사정도 아랑곳 않고 제 시간에 발차하는, 융통성 없는 차장에게 울분을 푸는 겁니다. 일본인처럼 주위를 신경 쓰는 것은 전혀 없고, 나쁜 것은 상대(차장)라는 것으로 불평을 하고 그것으로 그칩니다. ‘야, 이놈아’라고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나중에는 후련한 기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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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지하철에 오르는 한국인들/ 헤럴드경제


그 사이 폭탄주가 한 순배 돌고 난 뒤 김과장이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매우 ‘타인지향형’이에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긴장하고 그러니까요. 그렇죠.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모난 돌에 정 맞는다’는 식의 ‘조심’ 교육을 받고 자랐죠.

반면 한국인들은 ‘자기 지향형’이에요. 말처럼 방목돼 자랐죠. 자유분방함, 활기참, 독자성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지나친 눈치, 조심성, 의존성이 일본인의 특징이 아닐까요?"  


김과장은 얼근한 술기운 덕을 빌어 목소리를 더 높였다.

“현대인은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능률적으로 이 세계를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강한 가치관과 목적을 지닌 ‘자기 지향형’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 호감을 사고 싶은 강한 욕구로 인해 조직의 규범과 실세들의 생각에 충실히 순응하기를 원하는 ‘타인지향형’ 사람들로 말이죠.

여러분은 어떤 타입입니까? 마릴린 먼로의 남편이었던 아서 밀러의 희곡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남자는 오로지 일만 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자식에게도 버림받고 끝내 자살합니다.

일본에선 평생 회사를 위해 일에 쫓겨 살다가 이렇다 할 취미도, 노년에 대한 준비도 없이 퇴직을 맞아 괴롭게 사는 사람들을 ‘젖은 낙엽족’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이 사람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두 일본인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김과장은 말을 이었다.

“한국인들의 자유분방함, 자기 지향적 태도는 거칠긴 하지만 먼지나 흠을 잘 골라내면 훌륭하게 쓸 수 있는 원석(原石) 아닐까요? 지금처럼 하나가 된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과감한 독자성 말입니다."


폭탄주의 강한 알코올 파워 덕분인지 김과장의 마지막 귀절은 거의 웅변조였다.

“미국 제일의 기업 GE(General Electric)의 잭 웰치 회장이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당신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것이다’라고…. 또 3M의 전설적 경영자 윌리엄 맥나이트는 이렇게 말했죠.

‘격려하라. 이것 저것 간섭하지 마라.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배려하라. 그들을 혼자 내버려 두라….’" 

 

말을 마친 김과장이 호기롭게 일어나 성큼성큼 계산대로 다가가 계산을 치렀다.

“에이, 기분도 그런데 이차 갑시다."


두 일본인은 서로 쳐다보더니 싱긋 웃으며 따라 나왔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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