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초심(禪心初心)

- 도서정보
- · 저자 스즈키 순류
- · 역자 정창영
- · 출판사 김영사
- · 출간일 2013.02.28
- · 원제 Zen mind beginners mind
- · 페이지 260
스티브 잡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을 불교의 선(禪) 수행법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에 입양아로 들어가게 된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다. 청소년 시절 당연히 삶에 대한 회의와 일탈행동을 겪었으며 결국 선불교 사상에 심취하면서 자신의 올바른 인생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대표적인 책이 바로 ‘선심초심’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즈키 순류(1905~1971)는 일본의 정통 선불교 지도자로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선불교를 전파한 인물로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중 한사람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스티브 잡스는 자연히 스즈키 순류가 세운 타사하라 선 센타에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순류의 제자이자 보좌역인 오토가와 코우분(1938~2002) 스님을 만나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말하자면 스즈키 순류는 잡스의 스승의 스승인 셈이다.
잡스는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에 나온 사상과 수행방식에 매료돼 평생 선불교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일상생활에서 선 수행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가 20세기 후반 세계 IT업계에서 성취한 비범한 결과물들의 정신적 원류는 선 사상, 보다 구체적으로는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스즈키 순류의 평소 설법 내용을 제자들이 간추려 에세이 형식으로 출간한 것인데 일견 표현이나 내용은 쉽고 간단하게 서술돼 있지만 그렇다고 금방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선(禪)의 세계를 알아야 보다 정밀한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그렇지만 선에 무지하더라도, 기독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야 하는 태도와 가치관, 덕목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지키 순류 선사는 책에서 무엇보다 초심(初心·Beginner's mind)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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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 밖에 없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늘 유지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선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여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 선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매 문장을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야만 합니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안다’거나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비법입니다. 이 점을 주의하고 또 주의하도록 하세요, 좌선 수행을 시작한다면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선 수행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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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의 마음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편견 없는 마음이다. 어쩌면 어린 아이의 마음이요, 호기심, 겸손함,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는 이의 진지한 자세다. 이런 마음을 평생 가지고 사는 것이 선 수행이라는 것이다.
이런 초심은 결국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 즉 비판단(非判斷·non-judging)의 태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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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알면, 특징을 꼬집어서 이렇다 저다 할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강조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죠.
삶을 보는 눈이 대개는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좋고 나쁨’ 식으로 이원적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분별조차도 그 자체가 보편적인 존재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어떤 진술을 들을 때 보통은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켜서 듣습니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견해를 듣는 셈이 되지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자신의 모든 선입관과 주관적 견해를 포기하고, 그저 듣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하는 행동을 주시하기만 하세요. 우리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를 수용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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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청의 자세, 겸손한 마음은 단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정확한 눈을 가지게 만든다고 선사는 강조한다.
보통 사람의 인생이나 도를 닦는 수행자의 삶에 있어서나 인내(忍耐·perseverance)는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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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어떤 흥분 상태가 아닙니다.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구도자의 길은 ‘일편단심의 길’ 또는 ‘한 방향으로 달리는 수천리 철길’이라고 합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구도자에게는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겐 선사께서는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것은 준비가 아니라, 그것도 수행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단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지극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다른 생각 없이 오직 음식 만드는 행위만을 해야 합니다. 그저 음식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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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원치 않는 일, 불행, 재난, 사건 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선사는 수용(受容·acceptance)의 자세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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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완전하게 존재하면서 그 속에서 완전하게 존재하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즐거움과 어려움은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도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쁜 것이 좋고, 좋은 것이 나쁩니다. 이런 것은 모두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수행 따로 깨달음 따로가 아니라, 수행 속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수행과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고통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무상·無常)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몹시 힘듭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생각을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실천은 잘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쓸데없는 잡념 번뇌 속에서 살며 거기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헤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에 대해 스즈키 선사는 ‘애쓰지 않음(non-striving)의 마음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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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나 소를 크고 널찍한 들판에 풀어놓는 것이 그들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좌선을 하는 동안 완전한 평온을 얻고자 한다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심상을 물리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놔두세요. 그리고 저절로 가게 내버려두세요. 그러면 조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말은 쉬여 보여도 이렇게 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을 하는 방법이 수행의 비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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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를 써도 없어지지 않는 집착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스즈키 선사는 아예 신경쓰지 말고 ‘내비 둬!’라고 말한다. 집착을 끊는 방법, 곧 ‘내려놓음(Letting g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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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건 망념이군’하고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놔두십시오. 망념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관찰만 할 때 고요하고 평화로운 본래 마음 상태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망념에 대항하기 시작하면 휘말려 들고 맙니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것 또한 부처의 활동입니다. 또한 잡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역시 부처의 활동입니다. 이것이 인간성의 진실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부처의 활동임을 안다면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부처의 활동으로서의 집착이라면 그것은 무집착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안에 미워하거나 가까이 하기 싫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미워하는 마음 안에 사랑하는 마음이나 용납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과 미움은 하나입니다. 사랑에만 집착해서는 안되고 미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잡초가 성가시게 느껴지더라도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싫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되고, 사랑스러우면 사랑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행복은 슬픔이며 슬픔은 행복입니다. 어려움 속에 행복이 있으며 행복 속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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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 식으로 초심자의 마음, 비판단, 인내, 애쓰지 않음, 수용, 내려놓음의 자세를 갖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다보면 결국 우리가 바라는 마음 속의 고요(평정), 기쁨, 자유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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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수행자에게는 잡초가 보물입니다. 이런 선시가 있습니다.
바람 멎으니
떨어지는 꽃이 보이네
지저귀는 새소리 있어
산의 고요함을 알겠노라
모든 활동이 순간순간 무에서 나올 때, 우리는 순간마다 참 기쁨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공묘유(眞空妙有), 곧 ‘완전히 비어 있음 속에 놀라운 것들이 있다(공에서 불가사의한 것들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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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수행을 하다보면 이런 기쁨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선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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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를 걸으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요. 그 소리는 지속적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멈추게 하고 싶을 때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이며 포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연속적으로 떠오르겠지만,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졸졸대는 시냇물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을 때, 하고 있는 일의 느낌을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를 찾는 동안에는 자유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절대적 자유를 경험하려면 먼저 절대적 자유 그 자체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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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기 위해서 매일 좌선을 통한 선 명상을 하라고 얘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바른 자세’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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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자세로 앉는 것은 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바른 자세로 앉으면 저절로 바른 마음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이 마치 마음 밖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물결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 물결에 사로잡히거나 끌려다니지 않는다면 점차 고요하게 가라앉을 것입니다. 오분이나 십분 안에 여러분의 마음은 고요하게 잔잔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호흡은 아주 느려지고, 맥박은 조금 빨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국면을 큰 마음의 펼쳐짐으로 여기고 즐기기 때문에, 지나친 즐거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평정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큰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으로 좌선을 하는 것입니다.
좌선을 할 때 마음을 호흡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앉아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 호흡에 집중되면 자기 자신을 잊게 될 것이고, 자기 자신을 잊는다면 호흡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호흡에 집중하라고 해서 실제로 호흡에 집중하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수행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공(空)에서 나오는 참존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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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순류의 수행법은 궁극적으로 매우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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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그저 좌선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이것이 전부이며, 이 수행 속에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선(禪)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저 좌선을 할 뿐이지, 지적인 관점에서 선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미국 문화 시각에서는 매우 이상하게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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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심오한 깨달음이나 각성을 기대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저 일상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앉는 것,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앞서 얘기한 선의 태도를 유지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스즈키 순류의 선 수행법은 비범한 깨달음이나 견성(見性)이 아니라 철저한 일상성 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 ■